Daily Archives: June 16, 2009

Bella

Bella 7/10

매우 유쾌하다. 유쾌함의 첫번째 이유는 멕시칸들의 낙천적인 삶의 모습이다. 춤과 노래, 성찬과 웃고 떠듬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 이유는 영화가 제시하는 상처에 대한 해답, 치유의 방법에 있다. 그것은 잃은 사람들 사이의 연대, 부족함과 채움을 나누고 공유하는 관계, 서로를 돕는 커뮤니온이다. 그 관계가 근본적인 Healing power라고 말하고 있는 영화에서 위안과 힘을 얻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통찰을 제시해주는 유쾌한 가족 영화.

6/15/2009

박범신, 사랑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전업주부는 근본적으로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인가? 하층민이 어떻게 더 맞는 말을 하나 하는 신분제 사회에 살고 있는 것같다. 더 큰 문제는 글 좀 쓴다는 이런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사회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취급한다는데 있다. 대중에 대한 근거없는 우열감이 정치적인 의사에 반영되어 민주주의의 발전에 장애지 않토록 하는 기제가 필요하다. 내용이 맘에 안 드니까 잘못된 표현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글의 표현들도 문제가 많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던 스물 몇 살 때 나는 전율했다’ 이런 표현은 사춘기를 지난 사람을 써서는 곤란한 상투문장이다. ‘같았었다’ 한국어 시제 파괴에 참여하기로 한 건가?  ‘토를 달다’ 의미 사전에서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나의 지난날들은 사랑의 갈망을 소진시키는 데 급급해왔을 뿐이며, 내가 그동안 고단하게 지켜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쩌면 사회적 역할속(束)으로서의 ‘아내’와 ‘자식’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두 문장이 병렬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역할속 – 먹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결혼한 여제자와 문자를 왜 주고받냐. 큰 일 날 사람일세.

손석춘, 촛불의 학습, 학습의 촛불; 황진태, ‘듣보잡’ 현상과 진보의 위기

연대성의 부족이 현재 한국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습모임, 후원모임 모두 연대성solidarity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연대성에 대한 이념 자체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연대 이데올로기를 계발하고 제공하는 역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