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의 노예

행정교 성직자로서 다음 주 설교준비를 하면서 주석으로 이거 저거 찾아보고 있는데 펜들튼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해석에 따르면 미국의 혼란스럽고 부패한 정치와 행정을 개혁하기 위한 행정개혁의 시발점으로 역량있고 능력있는 공무원선발을 위한 법제도로서 미국행정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매관매직이 일상화된 정치적 임용을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험에 바탕을 둔 베버리안 관료제로 개혁한 작업으로 개혁과 혁신의 이미지가 부여되어 있다.

이번에 Straussman의 주석서를 보니 이게 사실은 1870년대 아일랜드를 비롯한 유럽으로부터 대규모 이민이 들어오고 이들이 투표권을 획득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정부를 장악해가는데 대하여 기존의 WASP들이 반동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책으로 만들어낸 제도라고 설명되어 있다. 표에서 밀리니까 고위공직자 자리는 뺏길 수 없다라는 의도로 교육 등의 자격을 내걸었고 겉으로 합리적 제도개혁으로 보이게 포장한 것이라는 것이다. 펜들턴이 상원의원인데 반동적인 인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보니 앞뒤가 딱 맞는다.

사실 Wilson의 정부의 연구라는 문헌도 행정교의 창세기에 해당하지만 이게 사실 당시에는 임팩트 없었고 행정교를 독립시키면서 사도들이 경전으로 발굴해서 제시한 것이다. 그냥 우리 밑에 있으라는 정치학자들에게 뭔 소리야 우리는 창시자가 너그들이 존경하는 미국 대통령이야, 우리는 족보가 남다른 학문이야라고 사실 만들어낸 전통이자 신화인 것이다.

역시 교과서의 역사는 믿으면 안 된다. 의심하고 질문해야 진실에 가까와 질 수 있다. 지금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초딩수준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다들 만들어진 교과서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 멀리 떨어져서 이해관계없는 제3국의 입장에서,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300년 후의 역사가의 입장에서 구한말의 역사를 봐야지, 친일공정, 반일공정으로 만들어진 교과서의 신화에 얽매이면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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