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과학자집단이 기본적으로 합의하는 분석의 틀이 전환되는 과정을 보면 사실 개인이 정치적 또는 종교적 세계관을 바꾸는 과정과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영어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라고 할 때 과학의 변화와 개인은 세계관의 극적인 변화를 동시에 의미하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과학에서 기본적인 설명인 근본이론이 설명력과 예측력에서 현실과 괴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것을 경험적 세계와 이론의 차이로 볼 것인가 이론의 근본적인 결함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고 이 이론이 설명과 예측에 있어서 보다 정확성이 높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더 많은 과학자들이 지지를 받게 되면 전에 있던 이론이 버려지고 새로운 이론이 채택되는 과정을 겪는다. 과학자집단의 근본 이론에 있어 이러한 변화가 생기면 이를 한 분야의 과학의 혁명으로 명명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집단적 지성의 변화라고 할 때 개인의 세계관의 변화는 개인 안의 다수의 경험과 인지, 의사결정의 네트워크인 지성의 종합적인 판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자가 과학자네트워크라면 후자는 의사결정단위의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이 정치적 또는 종교적 세계관을 바꾸는 과정을 보면 개인이 과거 쌓아온 다양한 경험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본적인 설명의 틀과 현실의 현상들과의 괴리에 대하여 심각성을 인식하고 보다 나은 설명의 틀에 대하여 열린자세를 갖고 적극적인 탐색과정을 통하여  보다 우수하 설명의 틀을 발견하고 수용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과학자사회가 새로운 이론이나 지식에 대하여 열려있고 합리적인 과정으로 적극적으로 검증해가는 메커니즘이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을 때 발전이 가능하다. 개인의 경우도 자신의 생각의 틀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회의를 품어야만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어떤 하나의 세계관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우상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Everything Must Go

 

Everything Must Go 7/10

연극적 요소가 많은 드라마형식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의 연출을 그런식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알코올 중독 외에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의 모습에 대하여 모든 것은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것이라는 상기시켜준다.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로 갖고 있으려하는 욕구때문에 중독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떠나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성현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관료조직도 공범이다

재벌도 공범이라는 주장이 공감을 받고 있는 상황에 관료조직도 공범이라는 애너로지도 가능하다고 본다. 국정농단에 관료조직의 적극적인 관여의 모습을 볼 때 관료조직이 피해자 코스프레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관료조직의 부역은 문화산업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분야의 건전한 발전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 점에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속가능발전과 관련되어 문제는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지표들이 대부분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인이나 조건이 아닌 양태나 결과에 관한 내용을 모니터링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어떻게 지속가능성이 형성되는지, 어떤 사회적 조건으로 지속가능성이 유지되는지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고 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여 어떻게 지속가능하지 않은 발전을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지속가능성은 생태계적인 자생적인 질서가 형성되어 유지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점을 간과되고 있다.

경제를 생태계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keystone species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을 것같다. 경제나 산업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keystone species가 활동력을 가지고 유지될 때 경제생태계 및 산업생태계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산업정책의 요체는 keystone species의 역할을 하는 산업이나 기업을 찾아내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주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사태는 관료조직이 문화체육분야뿐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분야를 해집고 다니면서 keystone species를 파괴한 사태로 그 사회적 악영향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관료조직의 책임은 심대하며 관료조직에 대한 징벌적 책임추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보람, 공정성

나라를 박살낸 인간들을 빨리 교도소로 보내도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다. 새로운 사회, 경제를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 하위가치이자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담론이 필요하다. 이후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개혁프로그램을 구상하면 될 것이다.

최종의 가치는 행복이라기 보다는 보람이 맞을 것같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존경할 만한 무언가를 달성한 뿌듯함, 충족감을 달성한 사회와 개인, 경제와 기업이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책임있는 성숙한 개인과 이들이 참여하고 연대하여 함께 하는 공동체가 이런 보람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국가와 사회.

이를 위해 달성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질서는 공정성일 것이다. 이것이 확보되어야 다른 모든 규범적인 가치가 의미가 있게 될 것이다. 공정성이 근간으로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일이 많고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분에 대한 수용도 높아질 수 있으며 경제활동의 효율성도 장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개헌

이원집정부제로 가던지, 내각제도 가던지를떠나 개헌의 내용이 중요한데, 행정의 핵심은 정책관리, 조직관리, 인사관리, 재정관리이고, 현재의 국정농단을 방지할 새로운 제도설계의 방향은 대통령에서 의회로, 대통령에서 내각으로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권한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조직관리에서는 정부조직법에 특별한 지위부여, 재구조화 과정에 의회에 특위설치, 이를 통해서만 입법안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일반입법과 다른 과정 거치도록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재정관리에서는 예산결의안의 형식으로 예산의 총괄적 내용을 의회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예산편성권의 일부를 의회로 이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책관리에서 핵심은 감사원의 독립기구화, 회계감사의 의회이전이 요구된다. 집행부서뿐 아니라 총괄부서인 기재부, 총리실 모두 무력했다. 정책감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으면 국정논단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정책감사기능의 헌법적 독립기구화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같다. .

개체와 시스템

개체는 하나의 정보처리이자 의사결정단위, 신경계를 통해 정보가 수집 집약되는 뇌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일관성있게 통제되고 행동하는 단위이다. 이 단위가 결정을 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개체의 이익의 극대화, 그 이익이 경제적이건 번식이건 정치적인 권력이건간에.
 
생물학책을 읽어보면 알듯 모를듯하면서 정리되는 다른 의견이 있다. 상이한 관점이 개체는 일관성있는 의사결정체이나 의사결정의 기준은 개체의 이익이 아닌 개체들의 집합에 내재되어 있는 DNA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체군의 DNA의 이익과 개별 개체의 이익이 상이한 경우가 많으며 개체의 의사결정에 모순되어 보이는 결과가 DNA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실 일관성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를 은유적으로 이해하여 반대로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체와 개체군의 DNA를 개체와 개체군시스템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개체의 현실적인 행동이나 규범적인 행동을 개체군의 이익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개체군의 DNA가 아니라 개체군 전체시스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개체의 행동을 유도,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그렇지 않은 행동을 억제한다. 경제생태계, 산업생태계의 이익, 발전을 정책의 목표로 설정하고 개체에 해당하는 기업의 활동에 이러한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정책의 내용으로 하는 것이 혁신시스템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

이세돌의 인공지능과의 승리는 아마 인류의 마지막 승리가 될 거라는 이야기, 인공지능이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호기심의 결과일거라는 이야기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대국을 보면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원천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이제 인공지능을 소유한 사람들과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사람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간격이 생겼다. 이제까지 육체노동에 한정되었던 소유에 따른 지배가 정신노동에까지 확대되어 소유와 지배에 따른 권력관계가 이전단계와 질적으로 다른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정신노동에서는 아직 유지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계급간의 이동이 이제는 불가능해지는 단계가 된 것이다.

둘째, 인간이 협업을 통해 생산해온 지식체계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까지 바둑을 포함하여 모든 분야에서 1차적인 단순화된 기초지식이 있고 이를 전세대가 전수해주고 후세대는 이를 무조건적으로 습득하고 점차 복잡하고 구체적인 지식을 추가하는 방식의 집단지성의 지식생산방식이 유지되어왔다. 이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와 인지적인 특성에 의한 것이었다. 이번 대국이 보여주듯 이런 형태의 지식이 기실 상당히 불완전하고 짜임새가 부족한 못한 지식체계임이 드러났다. 기본이라고 하는 몇 가지 규칙에서 벗어나는 수가 보다 효율적이고 우수한 해임이 드러났다. 이로써 바둑의 지식생산방식에 결함이 있음이 나타났고, 유사한 방식의 지식생산방식을 취하고 있는 인류의 모든 분야에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는 어떻게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지식공동체에 던져졌다.

셋째, 자료의 처리의 단계에서 인간은 더 이상 기계와 경쟁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자료, 정보의 처리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 일자리는 인간에게 돌아오지 않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사회의 발전과 부의 창출의 방향임이 분명하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데이터 투입 이전 단계, 데이터가 없는 단계에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어떤 데이터 아키텍트가 타당한가,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여 가공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설계에 한정된다. 이것도 기본적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단순화된 설계에서는 경쟁력이 없고 상상력의 개입이 많이 필요한 고도의 추상적인 단계에서만 그렇다. 이와 관련된 능력이 충분히 개발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의 차이는 극대화될 것이다.

개인적인 수준에서 어떻게 고도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관한 역량을 키울 것인가, 지식공동체 차원에서 어떻게 지식생산의 알고리즘의 재구조화를 이룰 것인가, 구조적인 수준에서 어떻게 계급간의 갈등과 충돌을 제도권 내에서 해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