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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그 새로운 길을 시작하며

유학, 그 새로운 길을 시작하며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윤동주, 새로운 길 중에서

유 학을 위하여 타국에 발을 딛은 지 일 주년 되는 날이 며칠 지났는데, 나에게 유학 생활을 시작하는 감회를 적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유학 생활 1년차 라는 것은 아직 시작조차하지 못한 단계인가 보다. 하긴 뒤돌아보면 365일이라는 날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도 안 나고, 그 동안 내가 한국에서 기대했던 어떤 성장이 구체적으로 있었는지 가늠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유학생활의 본류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또 다른 시간을 앞둔 지금, 지난 1년의 시간이 미국에 오기 1년 전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불연속적인 시간은 아니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야 하는 새로운 길은 항상 새로우므로 매 순간이 다르지만 동시에 이어진 한 길이었다.

이 스라엘 백성이 내딛은 발걸음은 항상 위기와 변화의 파고를 지닌 항해였지만, 궁극적인 구원을 향한 여정이듯이, 나의 짧은 삶의 여정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주어진 천로를 향한 여정임을 믿는다. 그들이 가끔 뒤돌아보며 지나온 길에서 배운 하늘의 교훈을 상기하듯이, 나에게도 지나온 과거는 창신(創新)을 위한 하늘의 보고이기도 하다. 숙제처럼 주어진 글 쓰기의 고역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변한다.

유학 준비 과정

나는 솔직히 내가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공부의 길에 들어서지는 않았다. 이 길이 바로 나의 길이라는 확신을 갖기보다는 배우는 기쁨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크게 느끼고 한편 다른 일을 잘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야를 한 두 가지로 좁혀 갔다고 할까.

오 히려 소명에 대한 확신은 유학 준비 단계를 거치면서 얻은 것 같다. 비행기표만 끊고, 가면 되는 유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것이고, 대학 입시에 버금가는 긴장의 연속인 유학준비과정에서 비록 실패의 불안감으로 바짝 긴장한 상태였지만, 천자문 외우듯이 단어 하나하나 외우고, 독해지문 읽어보면서 갖고 있던 지식의 양을 검토해볼 수 있었고, 추천장, 학업 계획서를 준비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학문적 비전을 확인하는 기회를 삼을 수 있었다.

‘ 이 상태로 어드미션 프로젝트(admission project)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이 길이 정말 소명의 길이라면 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하나하나 추진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 될 텐데, 답장을 기다리며 메일 보내고, 편지 보낸 피 말린 긴장의 시간도 인내와 믿음을 단련한 시간이었다.

이 때 나에게 주어진 두 가지 이슈가 있었는데, 첫째가 Gre 집단 치팅(Cheating)이었고, 둘째가 학교 선정 문제였다. Gre 문제가 유출되어서 인터넷에 떠돌 때 나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나는 무지 어려운 윤리적 결단을 해야 했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로 걱정하고 속상해 했었고 사실 불이익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느낀다. 이 일 이후 한국, 중국, 대만, 홍콩에서는 컴퓨터 시험이 더 시행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두 번째는 서너 학교의 어드미션을 받은 후 입학할 학교를 정하는 일이었다. 더 낮은 재정지원의 더 나아 보이는 학교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더 나아 보인다는 것이 기껏해야 불명확 기준에 의한 소위 랭킹에서 더 높다는 것인데…-에서 숨어 있던 가치관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결정에서 내가 잘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현재 상태에 여러 가지 이유로 만족하고 있긴 하다.

새내기 유학생의 경험

공 부라는 것이 결국은 무엇을 모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몇 가지 써 있는 종이쪽지를 모으고, 서지를 모으고, 자료를 모으고, 논문을 모으고…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처음 미국인들과의 수업에 참석하면서 무조건 모은다고 생각했다. 잔뜩 긴장해서 한 마디 한 마디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수업이 끝나고 나면 물리적으로 머리가 아플 정도가 되었다.

그 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작업이 무의미하고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서서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교수님들이 한국 대학원을 경시하는 것이 부당한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제외한다면 공부 자체는 한국에서 해도 개인적 역량만 된다면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 잖은 실망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한 양질의 지식을 최대한 흡수하는 것이었다. 관점을 바꾸어 내가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지식이라는 측면보다 창조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방법,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대학 교육 시스템, 연구자와 실무자와의 분업 체제 등을 배워야 함을 알게 되었다. 적절한 검증과 지원을 통해서 활동적인 연구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시스템이 여기는 있고 한국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영어는 처음에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주문할 때부터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아직도 말실수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자 교수님께 써(sir)라고 한다든지 조동사 뒤에 과거형을 쓰는 것 등은 귀여운 편에 속한다.

아 직도 감이 안 잡히긴 하지만 잠정적인 결론은 영어를 새로운 세계를 해석하는 언어로, 이 사회를 유지하는 문화의 총체로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를 이해하는 도구로만이 아닌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충분히 읽고 다양한 생각을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에 약간 위안이 된다.

첫 학기에 있었던 비교정치 세미나 시간에 말은 거의 못했지만 세 번에 걸친 리서치 페이퍼 발표에 열심히 노력해 의미 있는 가설을 제시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일은 실망과 좌절감으로 처져있던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교수님들이 견지하는 창조적인 가설과 논증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언어는 세계를 창조적으로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 국 학생들과의 교제도 새로운 즐거움의 하나였다. 영어도 잘 못하는 외국학생을 동료로 잘 받아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있다. 통계 문제 몇 가지 가르쳐주니까 매우 좋아한다.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덕을 좀 봤다.

배우고 확신한 일

유 학을 준비하고 워밍업을 한 1년 반의 과정에서 배운 삶의 교훈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생활이 특수한 상황인 것도 확실하지만 하나님과 가는 길이라는 점에서는 인생의 다른 시점과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을 살아갈 때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가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 학생활에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으로 ‘정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Gre같은 시험에서도 그렇지만 한국, 중국 학생들의 부정직한 태도는 미국 교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이 생각해낸 듯이 복사해서 붙이다가 표절로 정학 내지 휴학 당한 학생들이 주변 학교에 매 학기마다 있는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이 만만치 않고, 누가 볼까 하는 마음이 자주 들지만 바른 일을 바르게 해야겠다는 자신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아야겠다.

유학생활의 친한 친구인 외로움은 나에게 그 동안 부족했던 침묵의 기도(prayerful silence)와 피정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고 싶다.

겸손과 온유가 외로운 기도의 시간에 자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의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새로운 길, 당신과 가는 길에 대한 기대

이 땅의 일로 가슴을 아파할 때
별빛으로 또렷이 내 위에 떠서 눈을 깜빡이는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도종환, 당신과 가는 길 중에서

인 생은 답사기와 같다고 누군가 말한다. 한 곳에서 하나를 배우고 또 다른 곳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유학이라는 삶의 답사를 위해 이곳까지 온 나의 이 길이 당신과 가는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리고 학문이 공부를 담은 삶이라면 그 삶도 길일 것이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미지의 앞을 향하여 하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유 학 생활의 본류에 들어선 지금 앞으로 또 많은 굴곡과 좌절이 있을 것 같다. 코스웍을 마치면 봐야 할 논문자격시험, 프로포잘에 논문 완성까지 고된 일상과 불안한 내면이 불 보듯 뻔하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즐거이 가고 싶다.

유 학이라는 나의 길이 하나님과의 사귐의 여정이라면 좋을 것 같다. 외로움과 침묵의 시간이 성숙의 방편이라면 더욱 좋겠다. 무지에 대한 좌절감이 겸손을 만들면 좋겠다. 수고하여 얻은 지식으로 정직이라는 윤리가 몸에 깊이 배이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길 바란다. ‘그분과 나’에서 ‘당신과 나’ 관계로 바뀌는 친밀한 사귐이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길에서 답사기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노력에 달린 것 같다. 감상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않게 묵묵히 가련다. 당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