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육첩방은 남의 나라

문학의 힘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성숙이 반드시 필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찰나적인 명성을 넘어서 진정한 성공을 달성하기 위해 이는 꼭 필요한 요소이다. 먼저 정신적인 성장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자세를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에 머무르며 느끼는 탐닉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확장하는 성장에 따르는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고통을 적절하게 다루면서 인내하는 지혜와 의지력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은 참고 견디고 이겨내는 끈기가 있어야 할 것이고 동시에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통제하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태도, 의지력, 내적 가치관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 이것을 어떻게 자식에게 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자식이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지라도 이것은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유산이다.

Nature and nurture이 답일 테이고, 부모의 설득과 모범이 기본이 될 것이고 부모가 알게 모르게 하는 행동, 교육방식이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경험, 그리고 이에 대한 부모와 자신의 해석도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사회관계에서 존재하는 교육기제를 통해서 강화되는 유인체계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더한 나의 특이한 제안은 문학이다. 문학에 의한 인간성의 원형에 대한 체험은 상징과 분열을 해석해냄으로써 얻는 아름다움이라는 경험이다. 문학은 고통을 이겨내는 영웅의 체험이라는 구조를 표현양식에 내재한 기제로서 인간의 고유한 의지력을 강화시켜준다. 문학을 통해 아름다움에 다다른 여정을 이겨낸 사람은 고통을 이겨낸 내적체험과 가치관을 갖게 된다. 그래서 문학은 인간성을 완성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은 개고생

요즘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가치관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하는 점, 즉,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점이다.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각을 하는가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고, 어떤 변화이든 결국 주체의 해소 내지는 주체의 형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아기의 개인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개인의 경험에 주체의 가치관을 환원하고 있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주체에 의해서 선별되어 강화된다고 본다. 즉, 주체로서의 개인은 개인의 가치관에 대하여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고 본다.

문제는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 주체가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정신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화학적으로 고통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주어질 때 이에 맞추어 내 가치관을 보다 보편적이고 종합적인 틀로 바꾸는데는 고통이 따른다. 추상적인 차원이 아닌 직접 느낄 수 있는 생물학적인 고통이 따른다.

변화와 고통을 수용하고 나 자신을 새롭게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과 진실을 부정할 것인가 하는 판단을 해야 한다. 고통을 인내하고 새로운 자아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과 동떨어진 틀 속의 안정을 찰나적인 자극이 강화하는 쾌락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판단, 결단을 해야 한다. 광야에서 땀에 젖은 창조의 삶을 살지, 쳇바퀴 속의 안정과 쾌락의 삶을 살지 선택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개고생”에 있다. 인생의 핵심은 고통이고 이를 수용할 때만 찰나적으로나마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 이를 회피하고자 하면 구원의 가능성은 없어진다.

한국의 메달이 줄지 않는 이유

인구 대국이 아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소득수준이 높아감에 따라 금메달 숫자가 줄어든다. 동호회와 클럽 중심의 체육활동과 시민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조화를 이루면서 메달은 따도 좋고 안 따도 우리가 건강해지면 충분하므로 괜찮다.

대한민국은? 해가 갈수록 메달 수가 더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은 체육선수가 메달을 따지 못하면 바로 빈곤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그와 그녀는 인생 전체가 실패이자 평생 패배자로 낙인찍혀버린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사람이 어떻게 비장해지지 않을 수 있겠나. 투혼이니, 태극전사니, 혼신의 힘이니 가미가제로 몰려 벼랑끝에서 덤벼드는 사람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금메달이 만들어내는 서사는 인간성에 대한 압박이자 족쇄이다. 어려운 환경을 자학을 통한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한국적 영웅의 서사는 그렇지 못한 인간성을 비난하고 조롱한다. 현재에 감사하라, 긍정의 마인드만 가지면 되니까 불만을 갖지 마라, 다 그렇게 하지 못한 네 잘못이다, 더 일하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러니까 참아라.

한국이 중국, 미국 빼고 세계 3위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세상에 이런 감옥은 없기 때문이다.

언어의 폭력성, 권력성

이 사회가 성매매여성을 다루는 방식

종교와 종교인에게서 느끼는 거부감의 근원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과 권력성이었다. 언어와 태도로 드러나는 폭력성과 공격성이 너무 강하다. 그리스도는 폭력을 자신의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평화로 전화한 생명의 힘인데 반해 한국의 종교인들은 작은 폭력을 증폭에 증폭을 더한 보복의 재생산에 몰입하고 있다. 가장 심한 매개체가 언어이고 태도이다. 언어의 폭력과 태도의 폭력에 받은 상처가 너무 깊다.

아쉬움

이번 학기 별아저씨 모교에서 한 강의가 끝나고 아쉼움이 많다. 그간 파트타임 성인들이라 쉬운 논리로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야 말로 생소한 내용을 깨닫는 집중된 노력을 이끌어내는 흡입력있는 강의를 하려고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어차피 영속적인 관계는 없겠지만 강의과 과제로 오랜 시간 함께 몰입했는데 그 관계가 갑자기 끊어진 후에 느끼는 허탈감과 강사와 학생이라는 한계라는 느낌에서 오는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만일 교수와 제자라면 공들여 만든 팀프로젝트를 어떻게 더 발전시킬까, 수업에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뭔가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다신 볼 일이 없다는데서 오는 아쉬움도 크다.

결론은 하나다. 빨리 학교로 옮겨야 된다는 것.

종교는 잠

종교는 잠과 같은 것이다. 삶과 살림, 생활을 위해 쉼과 휴식을 주는 것이 종교이고 종교이어야 한다. 그 이상은 직업종교인들-사짜 좋아하는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공정정책연구소

교수들 중에 사설 연구소 차려서 작은 규모의 조직진단이나 정책컨설팅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벤치마킹하여 사회적 기업 형태로 연구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친 김에 이름까지 지어서 ‘공정정책연구소’. 조직진단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책연구보고서를 발간하는 사회적 기업 또는 사회적 연구소이다.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공정성에 대한 가치를 기초로 한 연구소. 아직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