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의 영성

약함의 의미

 

약함이란 무엇인가. 약함과 고통은 피하고 싶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바르게 만드신 것을 뒤틀어 버리고, 지혜로 창조하신 모든 것을 휘어 버리며, 아름다운 모든 것을 흩트려 버리는 것 같아 보인다. 우리는 어리석음 때문에, 타락한 세상에 그저 살고 있기 때문에 약하고 고통당한다.

한편 연약함은 성경에서 중요한 이미지이다. 성경의 진리의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약함과 어리석음에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약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된 기독교인은 자신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경 전반에 약함이 하나님의 주된 방법임을 보여주는 다양한 증거들이 존재한다. 고난받는 메시아의 약함과, 외부로부터 구원자가 필요하게 만드는 우리의 죄성에 기인하는 약함, 세상 권세들에 대한 우리의 상대적 약함, 그리고 우리가 우선적으로 약자를 환영해야 한다고 말하는 공동체적인 우선순위가 있다.

우리는 약하고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때로 의로움을 위해, 가끔 연약함으로, 또 세상의 부조리로 인해 고통과 약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기독교인의 삶은 고통과 약함의 의미를 깨닫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약함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약함을 무엇인가의 수단으로 바라볼 수 있다. 먼저 우리는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잘 알 수 있으며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절망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 앞에 벌거벗고 고통받게 될 때, 자신의 의를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을 우리의 구주로 인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다. 오직 약함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므로 가난과 약함을 선택한 신앙적 결단을 기뻐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의 어려운 시기를 견딘다.

두 번째 관점은 하나님의 질서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투쟁하면서 발생하는 하나님으로 인해 약함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설명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겪게 되는 약함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종종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려고 할 때 약함이 찾아온다. 세상의 조직적인 악의 제도와 불의한 사람들로 인해 때로는 옳은 일을 정의로운 방법으로 수행하려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으로 보이고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은 약함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지라도 그 약함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지켰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어 갖게 되는 영생의 기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약함을 가지고 선한 싸움에 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약함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하는 목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약함으로 아파할 때, 고통당할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약함으로부터 건져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약함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아파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약함의 자리,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장소이다. 약함을 벗어나 강해질 때를 위해서 견뎌야 하는 임시적인 고통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추구하고 누려야 하는 축복의 자리가 고통과 연약과 낮아짐의 자리라는 것이다.

약함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용서의 마음과 온유의 마음, 더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이 계획한 원래의 성숙한 사람으로 바꾸어준다. 또한 세상의 질서 때문에 겪게 되는 약함은 그것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삶으로서의 설교가 되며, 삶으로서의 예배가 되기 때문에 영광의 모습으로 우리를 바꾸게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함과 번영과 형통함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을 약함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의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며 약함을 위한 장소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주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또는 이를 이겨내면 얻게 될 강함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약함을 선택하였으므로 기뻐하는 것이다.

 

구속사와 약함의 자리

 

구속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며 구속사는 신약과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성취되고 구속사에서 이스라엘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에 의해서 완성된다. 구약성경 전체의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되었고 신약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가 드러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그리스도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에 따라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마디로 말해 약자의 질서와 강자의 질서의 충돌의 역사이다. 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에게 명백한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노예상태로 지배받고 있다. 이스라엘을 통해 전수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질서와 충돌하며 탄압받고 멸시받는 약자의 나라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강한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 집단의 동원을 추구하는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난 약자를 보호하는 공동체는 그 자체로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약해보이는 나라이지만 그 안에 당신의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련의 이적들로 노예상태로부터 해방시켜 주려고 하시지만 이스라엘마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강자처럼 보이는 세상의 질서에 편승하고 노예의 삶에 머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은혜로 주어지는 약해보이는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강자의 질서에 머무려고 하거나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지 않고 강자의 나라를 부러워하고 한편으로 추구하였다는데에 있다. 강자의 질서를 추구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약자들에 의해 구현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배척하는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배를 받거나 지배를 하거나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추구하거나 세상의 나라의 질서를 추구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강자의 질서를 추구하였고 세상의 질서의 일부분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야망을 좇아갔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은 가난한 자를 특별히 취급한다는 것임을 이스라엘과의 관계의 핵심인 법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의 법이 약자를 특별히 대한다는 내용은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정신이 힘을 추구하는 세력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의 법은 부자들에게 호의를 베풀기보다는 종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였으며 이민해온 자들과 과부들, 고아들처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약하고 영향력이 없는자를 옹호하였으며 그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공동체의 정신은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가장 많은 생산력과 군사력을 창출하는데 있지 않으며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가난한 자들이 보호받는 약한 사회를 추구하는데 있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자신들의 노예생활과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민족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상상하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고대하며 견디고 단련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질서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투쟁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으로 회복될 나라의 보존과 진전을 위해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려고 할 때 찾아오는 약함의 자리에 동참함으로써 민족 공동체에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불완전하나마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남은자들은 약함으로 아파함으로 고통당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경험하고 그 나라를 진전시켰다. 하나님의 방법은 공동체를 약함으로부터 건져 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약한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뜻으로 본 한 민족공동체의 역사는 거듭되는 공동체의 반역에서도 끊임없이 주어지는 하나님 나라로의 사랑의 초대이며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순종하는 신실하게 남은 자들의 응답이다. 그들은 아파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약함의 자리,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그 장소에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이끌어낸다. 공동체가 결집하여 약함을 벗어나 강해질 때에 나타나는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추구하고 누려야 하는 고통과 연약과 낮아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동참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룬 공동체의 역사를 이룬 것이다.

그리스도와 약함의 길

 

예수님의 생애는 약함으로 점철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이었으며 누운 곳은 구유였다. 오랫동안 예수님이 가난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 광야에서 사십 일을 지내시며 받은 시험은 경제적 힘, 존귀와 영광, 권력의 힘으로의 유혹이었고 이를 강하게 거부하신 일도 그의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중병환자들을 치유해 주시고, 죄의 사슬에서 환자들을 해방할 때 몰려든 사람들의 강함에 대한 요구에 조용히 피하신 일도 있었다.

예수님의 정신과 삶의 정수인 십자가의 죽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운명의 순간까지 강함에 대한 유혹을 이기시고 가장 약한 모습인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참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셨다. 십자가의 약함을 수단으로 인간이 구원을 얻게 하시고 인류 역사에 뻗어내려 있는 악의 뿌리를 이기셨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약한 상태의 죽음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이렇듯 약해보이는 예수님의 철저한 수모와 패배의 삶은 약함으로써 비로소 강함을 이기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세상의 질서는 강한 힘으로 이 땅을 지배하고 사단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였지만 그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승리하였고 환희의 부활을 성취하신 것이다. 우리의 죄를 지고 형벌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약함의 길을 걸음으로써 정사와 권세를 폐하여 십자가로 승리하셨다”(2:15). 이로서 예수님은 사탄의 질서를 파괴하시고, 죽음을 이기셨으며 죄의 권세를 정복하셨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타락하였을 때 사단이 다스리고 있는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 간 인간을 그리스도가 결정적으로 구원하신 것이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는 고난과 죽음을 즐겁게 선택함으로써 얻어지는 약함의 참 승리였다. 예수님은 순간마다 강함에 대한 유혹을 받으시면서도 고난과 죽음을 통해 약함의 길의 참의미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길로 초대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른 그리스도와 그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약함을 통해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기 때문에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도 그 길을 걷는다. 약함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구원이 계획을 따라갈 때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어 갖게 되는 부활의 기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약함을 가지고 선한 싸움에 임하는 것이다. 부활로써 그리스도의 상처가 치유와 구원의 샘이 된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까지 감수하며 자기를 내어 줌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에 충실할 때 승리를 얻고, 약함을 기쁨과 부활의 원천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 속에 세상과 인류의 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1:24) 이런 관점에서 약함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하는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각자마다가 자기 자신의 약함을 겪으면서 그리스도의 구속적 고통에 참여한다. 약함으로 아파할 때, 고통당할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며, 아파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약함의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이기고 죽음의 질서를 물리친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며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협력하도록 허락받는다.

만약 우리 삶의 목적이 예수님을 닮고 삶 속에서 그분과 일치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면 약함십자가를 즐거워 할 수 있다. 주님께서 친히 세상의 모든 약함을 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셨기 때문이다 (8:17).

예수님의 약함의 길을 좇은 그리스도인들은 고통 받는 종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의 약함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원천으로 삼고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그 길은 힘든 길이다. 그러나 약함의 길 위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도 약함의 정신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며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난하고도 약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약해도 약해지지 않고 강해도 강해지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약함

 

약함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나라는 겨자씨나 누룩처럼 아주 미미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누룩은 보이지 않지만 결국 가루를 부풀게 하듯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전복시키며 재창조한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약해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온 세상을 변화시켜 죽음의 요소들을 극복하고 생명으로 창조한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창조와 변화의 능력은 이미 왔으나 아직 완성이 아닌 현실이며 약함 속에 감추어져 있는 능력이다.

약함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이 나라는 우리가 자신의 죄에 대해 무력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한 존재임을 알게 해준다. 오직 고통과 약함을 경험할 때에 약함의 영성, 고통이 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과 약함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전적으로 그분의 무한한 은혜와 자비에 기초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며 전적으로 그 은혜에 의지할 때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인식조차 못하는 우리에게는 약함의 영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약함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가장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지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약함을 통해서 자신의 죄에 대한 무력함과 하나님의 은혜의 절실함을 깨닫게 되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창조의 능력을 먼저 경험한다.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사랑으로 악을 이기며, 폭력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반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약함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은혜의 세계와 약함 가운데 있는 은혜를 증거하는 사람들, 그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이다.

고통받는 불행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대속과 고통에 참여하며 하나님 나라의 창조의 능력을 특별히 경험하며, 약함의 영성을 통해 자기의 약함을 수용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의존하며 사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자들을 통해서 가장 잘 역사했으며, 교회의 능력은 약함을 통한 능력(고전 1:18~2:5)이었다.

약함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나라의 재창조는 약자와 약자들 사이의 참된 관계성의 회복으로 누룩은 보이지 않지만 결국 가루를 부풀게 하듯이 이루어진다. 타자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비로소 삶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 약함을 경험함거나 약함을 경험한 지체들로부터 은혜를 전수받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며 공동체에 가장 귀중한 지체들이다.

교회는 약함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라는 복음의 근원적인 원리를 깨달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며 우리 삶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도록 돕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위로의 침묵으로 함께 있어주는 가난하고 어려운 곤경 앞에서 신뢰와 도움의 실천으로 서로의 위로와 소망을 누리는 약자들의 연대를 형성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장 바니에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이 우리 곁에 있어야,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구원해야 할 선한 자들이 바로 우리라고 착각하는 권력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약함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나라의 현실을 가장 잘 이해한 그리스도인들은 장애인과 고난 받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비전인 하나님 나라는 타인의 고통과 함께 아파하는 공동체에서 구현될 수 있으며 약함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 명예, 권력을 향해 강함을 추구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공동체도 상처입은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 약함으로 내려가는 일이 평화를 찾고 참된 인간이 되며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며 오직 이 길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숨기고 내보이지 않는 가장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지체들이 진정으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가? 교회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실제로 그렇다면 수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장 바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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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약함의 영성

  1. 형님, 올해도 감사드립니다. 간사님들 중 한분은 전체집회 모든 메시지보다 올해 주제에 대해 더 잘 다루었다는 극찬을 하셨어요. 🙂

  2. 그분은 바로 다이앤이 아닐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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