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기획기사 1

어그러진 세상에서 자유의 누리로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 (요 8:36)”

자유를 잃은 사람들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물질적 풍요와 개인의 권리를 즐기는 21세기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져가는 경제적 불평등, 재난과 자연파괴, 소외와 갈등으로 불안과 억압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땅에서도 경제적 불확실성, 공포의 시대, 급속히 늘어나는 폭력적 오락,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개인적인 성취를 달성해야 한다고 하는 풍조는 우리를 끝없이 누르며 억압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눅 4:18-19)”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이 말씀이 자신으로 인해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

포로되고 눈이 멀고 억눌린 사람들, 자유를 잃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오신 것이다.

어그러진 세상의 질서

출애굽하기 전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권력이 정해놓은 벅찬 노동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소망 없이 경쟁하며 지배와 억압 속에 생존만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당시 이집트의 지배 시스템 안에서 공의와 정의는 무시되었고, 기득권 층의 이익을 보호되었으며, 힘없는 사람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착취를 당하며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할 수조차 없었다.

이러한 질서는 오늘날 예전보다 더 공고하고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경제체제는 불안정하고 불공정하며 시스템 안에서 무한정한 경쟁의 장이 확대되고 있고 지구의 기후적인 그리고 생태적인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과 충돌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정치가와 정치제도는 공공선을 따르는 권력보다는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그치고 있다. 사회 내에 인간과 자연을 존중하지 않는 세계관에 의한 질서가 지속되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 여성, 아동, 태아의 삶이 보호되지 않고 있다. 문화는 인간의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며 쾌락과 탐욕을 대리만족시켜주는 중독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강자가 약자를, 약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세상

 

세상의 질서 안에는 약자를 착취하는 강자와 강자에게 착취 당하는 약자, 자신의 약함을 이겨내기 위해 더 약자를 착취하는 약자가 존재한다. 강자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약자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힘쓴다. 더 나아가 강자는 약자가 자기에게 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약자들을 대립시키고 약자들도 자신을 지킨다는 허울 아래 더 약한 사람을 또 다른 형태의 착취를 통해서 억압한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 혹은 지키기 위해서 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

사실 싸움의 한복판에는 스스로를 약자로 인식하며 고달픈 삶을 힘들게 꾸려가는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약자를 착취하는 억압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강자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착취당하는 약자들의 존엄성 상실도 비참하지만, 착취하는 강자들의 인간성 파괴도 심각하다.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잃어버리고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비하하고 그런 황폐함마저 느끼지도 못하도록 스스로를 무감하게 만든다. 공감과 나눔의 인간은 그런 황폐함을 견디어 낼 만큼 독하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하게 된 세상의 자식이 되고 만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자와 약자는 어디선가 싸우고 있을 것이며 동시에 스스로와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소외하고 상처받고 고통당하고 있을 것이다.

악의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욕망까지 죄의 권세 가운데 내어주고 말았다. 우리가 경쟁에 이겨서 일시적인 우월감과 안정감을 누리든지, 여전히 경쟁 속에 허덕이며 패배감과 궁핍함을 살든 결국 죄된 세상의 죄된 욕망의 지배 하에 놓이고 말았다. 교만, 탐욕, 시기심, 정욕, 탐식, 나태, 분노라는 일곱 가지 죄가 인간에게 주는 악의 쾌락에 사람들은 빠져있다. 교만은 자기도취나 과대망상뿐 아니라 자기 지위를 강화하고자 하는 모습과 성취감으로 탐욕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시기심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을 동경하고 증오할 대상을 무시할 때 느끼는 우월감으로 나타난다. 정욕과 탐식은 파괴적인 쾌락으로, 나태는 무기력감을 즐김으로, 분노는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는 공격과 통제의 우월감으로 인간에게 쾌락을 준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파괴시키는 악의 쾌락의 포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로의 초대

 

예수님의 복음은 이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한다. 어그러진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누리로 나오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의 기쁜 소식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경쟁의식, 이웃과 사회의 고통과 이에 대한 무관심, 죄책감과 불안, 자기파괴의 고통,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집단적 흥분과 쾌락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신 것처럼 이러한 죄의 권세와 세상의 질서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로써 우리는 강자의 교만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고 약자의 비애로 인하여 다른 약자를 착취하는 불안감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며 당당히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소명에 따라 살 수 있다.

예수님의 복음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을 자유케 한다는 점이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세상의 어그러진 질서와 그릇된 세계관로부터 자유의 누리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가식적이고 허위적인 자유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 초대하신다. 불안과 억압의 압박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의 초대에 소망을 갖게 된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떠한 대가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기획기사 2

완성을 향해가는 자유인의 삶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이사야 65:17-18)

자유를 얻은 노예

 

하나님께서는 죄된 권세와 욕망 아래 자신을 내어주며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내심으로써 그들이 죄된 권세와 욕망 모두에서 떠나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통치원리에 따라 살도록 하셨다.

자유를 얻은 노예는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 없이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풍성함을 얻었고 더 이상 이집트의 지배 시스템 안에서 착취당하거나 다른 이들을 이기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유를 얻은 노예들은 이제 죄의 포로가 아닌 매일같이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아직 만나를 저장하거나 안식일에도 만나를 찾으러 나가는 헛된 수고와 죄된 욕망의 포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자유를 얻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다스리심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나라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피흘림이 없는 정의로운 나라, 다툼이나 그로 인한 상처가 없는 나라,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없으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압제하는 일이 없이 정당한 땀의 대가가 있는 나라이다.

완전히 회복된 새하늘과 새땅,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놀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는 나라는 깨졌던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완전한 평화의 나라이다. 평화로운 나라는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어 생명의 자유를 누리며, 생명이 풍성하고 더 이상 다툼과 아픔과 상처가 없는 나라이다.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고 염려와 두려움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 약육강식이 없고 거짓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삶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순간적인 쾌락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감사하고 기뻐 할 수 있는 희락의 나라이다.

회개와 용서와 연대의 관계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회개와 용서와 연대의 삶을 산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과 삶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다른 제자들과의 새로운 친교의 삶 안에서 그 용서받음을 실천하도록 부름받았다. 하나님 나라에서 죄의 용서를 비는 회개는 관계의 문제를 직접 제기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늘 인간들 사이의 관계 회복과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간의 관계는 더 이상 착취와 억압의 관계가 아닌 용서와 사랑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 새로운 관계와 변화된 삶으로 변화시켜주신다는 점에서 용서의 근원은 하느님이시다. 하나님의 용서를 우리 모두를 위하여 얻어낸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용서받고 용서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한다.

용서는 하나님 백성의 연대성의 회복을 가져다 준다. 하느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용서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형제와 자매로 만들고 모든 인류를 형제자매 공동체로 바꾼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의 일치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나누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은 성숙한 사람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단순하고 평화롭게 살며,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고, 사람들을 섬기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좇아산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참된 뜻을 이루면서,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을 하고 평화롭게 하며 산다. 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죄의 문제를 사랑과 화해·연대의 관계회복 문제로 해결하는 참된 신앙인으로 산다. 그리스도의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을 삶의 모범으로 삼고 그를 따르는 삶을 산다. 성숙한 도덕적인 목적을 자신의 삶 속에서 완전히 구현하며 그리스도의 삶을 좇아 사는 사람들로 변화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산다.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며 삶의 전 영역을 변혁한다.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연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죄인과 세리와 죄인, 창녀들에게도 와서 함께 먹자고 부르신다. 하나님 나라는 고달픈 세상의 억압에서 나와 누구든지 정의와 평화와 희락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누구나 육신의 양식을 뛰어 넘어 생명의 양식인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죄된 권세와 죄된 욕망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 자유케 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안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평화와 희락의 나라, 용서와 화해의 형제자매의 공동체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우리는 새하늘과 새땅을 영원히 기뻐하며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기뻐한다. 이 초대에 당신은 응답하겠는가?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이사야 65:18-19)

 

 

 

기획기사 3

 

진정한 자유를 살아가는 길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다니엘서 1:8-9)

우리는 어떻게 자유의 삶을 살아가는가?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타락하였고 하나님 나라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자유는 우리 개인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유 없이 고통 받는 이웃에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과 피조물들도 자유케 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롬8장), 죄의 권세에 속박된 세상에 그리스도의 자유가 선포되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하나님 나라의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안락함을 포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삶일 것이다.

우리는 죄된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직은 고난받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으며 성령으로 하나되는 공동체 안에서 자유의 삶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다.

고난받는 자유의 나라를 위해

 

거룩함을 지키고 이웃을 생각하고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흐름에 저항하며 사는 삶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세상의 나라에 의해 핍박받고 억압받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필연적으로 세상 나라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세상의 질서 속에서 억압과 압제로 인간을 통치하는 세상의 나라는 인간의 해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고난은 무의미한 고난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며, 고난으로 인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현재화한다. 예수는 그에게 닥칠 죽음의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같이 하나님 나라도 고난에도 불구하고 점점 퍼져가며 세상의 나라를 이를 이길 수 없다.

성령으로 하나되는 공동체로

하나님의 나라의 자유는 공동체 안의 관계를 통하여 경험하고 구현할 수 있다. 공동체는 세상 나라의 조작된 욕망, 조장된 불안에서 서로를 해방시키며 함께 살리고 의지하는 관계에 대한 거룩한 욕망을 낳는다. 우리는 겸손, 온유, 인내와 용서의 마음으로 공동체의 하나됨을 추구할 때 참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고난을 기쁨으로 이기며 죄인들이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한 마음이 되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때 참 자유가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성령으로 하나되는 공동체를 통해 자유를 누리고 자신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다.

이 공동체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공동체를 말한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세상나라의 악을 직면할 때 적극적으로 악에 저항하되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극복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성령으로 하나되는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자라고 함께 누리는 공동체이다.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를 감싸주고 사랑하며 함께 자라가며 함께 누리는 아름다운 공동체에서 참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라

새로운 자유를 경험하기 위해 낡은 삶은 포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들은 세상의 죄와 유혹의 권세 속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함을 지키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생명이 들어설 여지를 만들기 위해 충만히 살아있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우리 자신을 열어 진리의 성령을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한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바빌론의 권세로부터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왕궁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이는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개인적인 선택인 동시에 바빌론으로 대표되는 세상 권세에 저항하는 공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우리도 죄된 권세와 죄된 욕망을 버리는 선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 자유케 될 수 있다. 잘못된 구조의 수혜자로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억압당하면서도 보지도 바꾸지도 못했던 삶에서 돌아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우리를 해방시키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로 충만되고 통일되는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

 

고난받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해 사라진 것같이 보였지만 예수는 부활시켰고 이로 인해 세상의 나라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세상의 나라의 지배 아래 있던 인간들도 이제는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이미 죄인일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자유의 길이 열렸다.(롬5장) 그는 일생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을 이 나라로 부르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게 하고 그 나라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제 누구든지 이런 예수를 만나고 이런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때 그는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케 됨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온 세상은 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케 될 것이요(골3:11), 통일될 것이다.(엡1:10) 인간은 이 계획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초대에 응답해야 하며 참된 삶을 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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